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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새벽, CJ그룹 본사에 검사와 수사관 80명이 들이닥쳤습니다.

비자금 조성과 탈세 의혹을 밝히기 위한 압수수색입니다.

지난 29일에는 이재현 회장의 집도 압수수색했습니다.

검찰은, CJ그룹이 조세회피처의 법인과 서류상 회사를 통해 해외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 29일, 국세청도 칼을 뺐습니다.

<녹취> 국세청 발표 :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여 세금을 탈루한 탈세혐의자 23명에 대해서 일제히 세무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앵커 멘트>

조세회피처를 통해 탈세한 혐의가 있는 효성그룹 등 법인과 기업 사주, 23건에 대해 일제히 세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즉, 서류상의 회사를 설립해 비자금을 만들고 탈세를 하는 기업과 부호들.

꼭꼭 숨겨져 있던 그 검은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또, 어떻게 운용을 했을까요?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적들과 싸우며 숨겨진 보물을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 '보물섬'.

여러 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진, 잘 알려진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입니다.

소설 속 보물섬인 이곳이 전 세계 부호들에겐 지금도 보물섬이나 다름없습니다.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곳, 바로 조세회피처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이곳에 서류상 회사를 만들어주는 대행사가 3백여 개나 몰려있습니다.

<녹취> 법인 설립 대행사 관계자 : "(설립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요?)일주일이면 다 준비됩니다. 모든 서류가 다 도착하면 일주일이면 돼요."

우리 돈 2백만 원 정도면 누구든 쉽게 서류상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법인 설립 대행사 관계자 : "초반 설립비용과 연간비용이 있습니다. 등록비용은 천 달러이고요, 한 번만 내는. 그리고 해마다 7백 달러를 내면 됩니다."

이곳에 법인을 만들고 계좌를 개설하면 세계 어디에 투자를 해 얼마를 벌든지 세금이 없습니다.

<인터뷰> 메켈러(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회계법인 회계사) : (여기에선 세금이 전혀 없는 겁니까?)전혀 없습니다. (법인세가 없나요?) 법인세라는 게 없어요. (소득세는요?) 소득세도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연방직할령 라부안, 인구 7만 명의 이 작은 도시 역시 세금이 거의 없는 대표적인 조세회피처입니다.

이름과 계좌만 존재하는 서류상 회사가 만 개 이상 있습니다.

이런 조세회피처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 보장에 있습니다.

<녹취> 브로커 : "신탁회사의 설립 목표는 고객 보호에 있습니다.(신탁회사가 고객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건가요?)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는 게 계약조건이에요."

조세회피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라부안을 비롯해 케이맨제도, 바하마, 버뮤다, 홍콩, 싱가포르 등 전 세계 30여 곳에 이릅니다.

CJ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도 조세회피처와 깊게 얽혀있습니다.

조세회피처의 서류상 회사가 국내에 납품한 것처럼 꾸미고 구매대금을 송금하는 방법으로 해외 비자금을 마련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세청에 꼬리가 잡힌 23건도 조세회피처의 서류상 회사를 활용해 다양한 수법으로 탈세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한 제조업체 사주는 동남아 현지 공장에서 만든 상품을 해외에 수출하면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만들어둔 서류상 회사를 통해 수출한 것처럼 꾸몄습니다.

<인터뷰> 김영기(국세청 조사국장) : "그러면 BVI(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는 중간에 거쳐가면서 상당량의 수익을 얻도록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BVI에 떨어진 수익은 사주의 해외계좌에 은닉을 했고…"

또 중국 현지공장이 수출로 얻은 이익은 홍콩의 서류상 회사에 배당하고, 배당 소득을 해외 비밀계좌에 숨기는 수법으로 한국내 세금 신고를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외국투자금이 들어온 것처럼 꾸민 이른바 '검은머리외국인'도 있었습니다.

한 금융회사 사주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서류상 회사를 세운 뒤 이곳을 통해 국내 금융상품에 투자했습니다.

소득 신고는 하지 않았고 수익금은 여러 해외계좌로 분산해 숨겼습니다.

<인터뷰> 이유영(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담당) :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구조를 만들 수 있거든요. 어쨌든 간에 궁극적인 목적은 뭐냐면 말씀드렸던 것처럼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안 내거나 자기 정체를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비밀스럽게 자금을 역내로 다시 들여오든지 역외에서 투자해서 투자수익을 불리든지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국내 최대 해운선사, 한진해운.

이곳의 최은영 회장이 조용민 전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와 함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서류상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씨가 회장으로 취임한 2008년, 바로 그 해 10월입니다.

최 회장 측은 서류상 회사 설립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녹취> 한진해운 관계자 : "그때 전 한진해운홀딩스 조 대표님이랑 같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건 맞고요, 그게 유지되다가, 뭔가 필요성이 있어서 하셨을 텐데, 더 이상 필요 의미가 없어서 본인(최 회장)은 2011년에 정리하셨고 본인은 완전히 빠져나오셨어요."

경총 회장을 지낸 OCI의 이수영 회장 부부는 2008년 버진아일랜드에 서류상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OCI가 태양광전지사업으로 각광받고 주가가 치솟던 때여서 대주주인 이 회장 일가의 배당금이 여기로 흘러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옵니다.

<인터뷰> 이창식(세무사/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 "배당금으로 여러 가지 자산이나 이런 부분들을 운용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지역에. 그럼 그 차액은 세금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다 그 회사 페이퍼컴퍼니가 세금마저도 차익을 발생시킨 겁니다."

OCI 측은 서류상 회사 설립을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접촉을 피했습니다.

서류상 회사를 활용해 해외 부동산 거래를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역사 황용득 사장은 도쿄지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1996년 서류상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이 회사는 하와이의 콘도를 두 채 사들였고 이 콘도를 2002년 한화그룹 일본 현지법인에 팔았습니다.

왜 이런 거래를 했을까?

<녹취> "사장님 계십니까?"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황 사장은 직접 해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화 측은 정당한 절차였다고 해명했지만 거래 차익이 누구에게 갔는지, 세금은 어떻게 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한화그룹 관계자 : "40만 불 정도 우리나라 돈으로 4억쯤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는 뭐 그렇게 큰 금액이나 그런 건 아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효성그룹 창업주의 3남 조욱래 DSDL 회장은 2007년 장남과 함께 서류상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2007년은 조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긴 시기여서 그 배경에 의혹이 제기됩니다.

<녹취> "(조욱래 회장님 계십니까? KBS에서 왔는데요.)안 계시는데요. (요즘 국내에 계시나요?) 아니요."

DSDL측은, 회사와는 관련 없는 일이며 모른다고만 밝혔습니다.

<녹취> DSDL 관계자 : "그거는 회사와 관계없는 일이라 저희가 모르거든요. 제가 알지 못해서 답변 드릴 게 없습니다."

서류상 회사에는 교육, 문화, 금융계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그의 아내인 배우 윤석화 씨, 전성용 경동대학교 총장 등도 조세회피처의 서류상 회사에 이사 또는 주주로 올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김용진(뉴스타파 대표) : "현재까지 저희들이 ICIJ와 공동 취재를 한 결과 한국인 명단이 245명이 나타났습니다. 근데 이거는 지난 한 달간의 1차적 결과일 뿐이고 앞으로 그 명단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서류상 회사 설립 자체만으로 탈세와 위법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혹이 제기된 이상 해외계좌 자금이 합법적인지, 세금탈루는 없었는지 등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녹취> 조수진 변호사('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팀장) : "납세의 의무가 지금 조세도피처를 이용해서 악용되고 조세가 탈루되고 있지 않으냐는 이런 혐의가 제기된 이상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은 명명백백합니다. 국세청에서는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혐의가 있다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해야 할 것이고 한 푼의 세금도 탈루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 이유영(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담당) : "국가 체제에서 소득을 쌓아올린 기업이나 개인들이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역외로 고스란히 추적도 안 되면서 빠져나가 버린다면 어쨌든 국가 영역은 계속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재정 수요도 많아지고. 그 부분은 결국 개인들이 다 메워야 하거든요."

지난 40년 동안 한국에서 조세회피처로 빠져나간 돈이 약 860조 원,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 규모라는 추산도 있습니다.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탈세를 추적하고 나아가 미리 차단하는 것, 조세 정의와 경제 민주화를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습니다.